생활과 명상서적.

사람들은 명상을 떠올리면 온유하고, 부드럽고 마치 아로마테라피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러는 와중에도 명상가가 자신의 에고를 건드려줘서 속을 시원하게 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보면, 오쇼나 크리슈나무르티,달라이라마의 책들은 늘상 인기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내가 요즘 참 절실하게 읽고 있는 무명암 eo의 책이라던지, 구르지예프는 좀 스타일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구르지예프는 사람들을 인간 기계로 보아, 사람들을 연구하는것을 기계역학으로 본다던지,
무명암 eo는 사람들을 원숭이,기계, 장작으로 보아 지구상엔 명상가던 일반인이던 도처가 얼간이 투성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건 양쪽 다지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성향이라던지.
그 사람이 전해주려고 하는 바에 따라 전달되는 바가 다를수밖에 없는것은 사실인듯 하다.


나는 요즘들어 전에 보던것과 다르게 생각속에서 조금씩 벗어나 사물들을 다시금 보게 된다.
다시금 보노라면 참 사람들은 생각속에서 많이 살고 있고.
생각과 자신의 생활패턴속에서 어떤 틈바구니 안에 프로그램들을 계속 돌리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다.

내게 묻는다면, 나는 자유로운 오쇼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현실의 삶은 구르지예프나 무명암eo쪽의 세계에 좀더 가깝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구르지예프나 eo가 더 정직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내가 느끼는 괴리감은
사실 사람들이 말을 듣는것 같지만,
말을 듣는게 아니라 마치 벽돌부수기 게임을 하는것이나
테니스를 치는것처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반응하고 있을뿐.

말을 제대로 듣는 사람이 별로 없구나 하는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참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마치 기계처럼 보일때가 참으로 많다.

기계적인 패턴을 갖고 있고, 그 패턴을 방해받으면 화를 내거나 공황상태에 빠지고.

구르지예프는 '자유'는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게 아니라 얻어져야 할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선종이나 불교의 더 '멀리간'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지금 이 순간 그 자체가 자유
라며, 비판하겠지만. 일상적인 의미에서 자유란 사람들에게 진짜 얻어져야 할 것이라는 느낌이다.


나의 스승 청학선생님께선 본래 자신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는것은
요가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을 넘어서는것 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나의 프로그램을 넘어서지 못하고 '나'의 프로그램의 벽에 막혀있다.
나의 프로그램으로부터 먼저 자유로울수 있는다음.

어디 한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by 日明 | 2007/05/19 08:23 | 삶의 도중에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daskalos.egloos.com/tb/318085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stream45 at 2007/06/01 15:32
오랫만에 뵙습니다. 뒤늦게 인사드리네요. 그동안 다시 오셔서 쓴 글들을 보고 가곤 했었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日明 at 2007/06/02 08:47
반갑습니다.

사실 수행에 관한 이야기는전부 네이버에서 쓰는지라, 여기는 잘 안적게 되네요.

여하튼 다시한번 반갑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